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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대통령이 직접 쓴 항몽순의비

갈밭 2009. 8. 31. 09:08

아이들 열 한 명과 떠난  제주도 3박 4일 일정 마지막 날에 향파두리성을 찾았다.

제주말이 그렇듯이 '향파두리' 라는 말도 뜻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항아리 모양의 철옹성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몽골군과 고려 정부군에 맞서 강화도에서 진도로, 진도에서 제주도로 쫒겨오면서 고려땅에서는

더 이상 물러 설 수없 곳이 제주도 인셈이였다. 항쟁의 중심에 선 사람들은 몽골군과 싸우다가 최후를  한라산에서 맞이했고,일부는 일본 최남쪽 섬인 오키나와 까지 가서 정착을 했다고 한다.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군의 정신은  대단한걸로 학교 역사시간에 배웠다. 

강화도,진도,제주도로 이어지는 바닷길 지도가 그려진 역사 책에다  좌별초,우별초, 신의군  삼별초군의 구성은

시험문제로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 큰 나라를 상대로 끝 까지 버틴 힘과 저항 정신은 높이 사야할 것이다.

 

그래서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방문의 계기로 흔적만 남아있던 항파두리성을 일부라도 복원해서  역사의 교육장을 삼고 있다고한다.

그리고 몽골군에 대항해 죽은 삼별초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새운것이 '항몽순의비' 다.

한자로 씌여진 항몽순의비 글자를 박정희 전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라는 문화해설사 선생님 이야기다.

이렇게 순고한 뜻을 지닌 유적지  바닥 길에 돌로 깔기로 했는데, 박정희 전대통령의 지시로 돌을 기계로 다듬지 않고 일일이 정과 망치를 이용해서 사람의 손으로 다듬었다고 한다.

 

힘이 많이 들어간 돌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고려시대나 지금이나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사람들 때문에

힘든 일이 많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숭고한 역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했을 수도 있을것이다.

 

제주도 사람의 처지에서는 삼별초군이 제주도 들어왔을때는 또다른 침입자이고, 그사람들의 뜻에 따라

힘든 성 쌓는 일을 감당했어야 했다. 또한 몽골군이 백 년 넘게 지배하고 난뒤 고려정부군과의 싸움에서 또 한 번의 희생을 치뤘다.

 

그런데 '항몽순의비' 글자를 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삶이 빼앗긴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선 사람인가? 하는 물음에는 아닙니다 이다. 물론 대통령으로서 그렇게 할 수도 있을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일제감점기때 독립군을 잡는데 앞장섰던 일제 장교출신이 아닌가? 한번이라도  지나간 시절을 반성해 본적이 있을까?   저는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라 지킬려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를 빼앗은 사람들에게 충성한 사람이었다.

 

최소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손이 부끄러워 '항몽순의비' 비석의 글자를 쓸 수가 없을것이다. 그것도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삼별초군이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제주 항파두리성에서 배우는 또 다른 역사 이야기이다.

 

 

 

제주 항파두리성 역사 전시관에 있는 그림이다.  배 만드는 노역에 동원되는 고려 백성들의 모습이다.

뒤에서 채칙을 휘두른 군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백성들은 이렇게 싸우다가 죽어간다.

 

 

 

 

 

 

 

 

 

항파두리성 안에 있는 '항몽순의비' 다. 나라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공간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저 글자를 못 읽는다. 그래서 중국글자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요?

 

 

 

                   제주도 돌은 화산재가 섞인 돌이라 바닥돌로 인기가 높다. 직접 손으로 다듬은 돌이라  자연스런 느낌은 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