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사진

사람들은 참군인 김영환 장군을 기억합니다.

갈밭 2009. 6. 17. 02:57

 


‘참으로 목숨을 건 판단과 애국심으로 이룬 불멸의 위업이 아닐수 없다.’-지관스님

 

 

  경남 합천해인사에 있는 김영환 장군 비석. 대장경판 모양을 하고 있다.

 

 

 


 김영환 장군이 미군의 폭격 명령을 어기고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을 지킨 뜻을 기리기  위해 합천 해인사에 세운 비에 새긴 글 내용입니다.


군인이 전쟁중에 상관의 명령이 어긴다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역사는 명령을 어긴 군인보다는, 비록 명령을 어겼더라도 목숨을 걸고 문화재를 지킨 그 뜻을 높이 평가 하는 것 같습니다.


김영환 장군은 그 유명한 영화 ‘빨간 마후라’  실제 주인공 이였습니다. 1951년 9월 한국 전쟁 당시 지리산과 가야산은 인민군과 국군, 미군 치열한 전투를 치루던 곳입니다. 해인사를 인민군 활동 근거지를 삼자, 미군은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를 폭격하기로 하고 김영환 장군(당시에는 대령)에게 해인사 폭격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빨치산 몇 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팔만대장경을 불태울 수 없다.” 며 해인사에서 벗어난 남쪽에 폭격을 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합천 해인사에 있는 길상탑. 신라 말기에는 해인사가 후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전투를 하던 곳이다.

    길상탑을 해인사 보물을 훔치러온 도둑을 막기위해 싸우다 죽은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탑이다.

 


미군은 명령을 어긴 김영환 장군을 군사재판에 회부하게 되지만, 전쟁 중의 공훈을 인정받아 벌을 면하게 됩니다. 그 뒷면에는 당시 친형이였던 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의 힘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봅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은 일본 영토에 비행기로 엄청난 폭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던 교토는 폭격에서 제외시킵니다. 한국전쟁 당시 아무죄 없는 백성들이 미군 폭격에 죽어 갔고, 우리나라 어느 곳도 미군에 폭격에서 벗어난 지역이 있었던가요?  평양과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수원화성, 진주성도 미군의 폭격에 받았다고 합니다.


김영환 장군은 1954년 1월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지만 34살의 나이로 전투기를 몰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하게 됩니다.

 

 

▶영화 '빨간 마후라' 포스터.


김영환 장군 비석을 보면서 요즘 공직자들의 모습을 떠 올리게 됩니다.

검찰은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행동을 해서 많은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경찰 또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한 폭행을 가해 또 다른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전직 국세청장의 잘못을 지적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파면을 당한 국세청 직원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 속에서 전쟁 중에도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해 국익에 도움을 준 김영환 장군을 새롭게 떠 올리 게 됩니다.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건지 정확히 알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런 사람을 오랜 세월속에서도 기억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