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이야기

막사발이 차사발로 그리고...,

갈밭 2020. 8. 8. 18:27

막사발이 차사발로 그리고 진해 정신으로 거듭났으면...,

 

**아래 글은 개인의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전문가의 지식이 부족합니다. 의견 주시면 바꿔 가겠습니다.

 

1. 흙으로 빚은 그릇과 우리가 아는 것

 

지역에 있는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 가면 꼭 있는 것이 토기들입니다.

역사가 있는 도시라면 오래된 무덤이 있고, 그곳에 나온 유물 중에 흙으로 빚어 구운 토기들 단연 오래 남아있습니다. 흙으로 빚어 만들어서 구리나 쇠로 만든 유물보다 오래 남습니다.

토기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이 국립김해박물관입니다.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토기들을 보면, 오래 전부터 흙으로 빚은 그릇은 우리 생활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기가 도기로, 도기가 자기가 되어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우리는 도자기 역사에 대해 잘 모릅니다. 토기하면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가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라는 사실만 외웠고, 고려는 청자, 조선의 백자라는 단순한 지식만 알고 있습니다.

생활속에서 흙으로 빚은 도자기와 함께 구리주석으로 만든 놋그릇을 함께 써 왔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스텐으로 만든 그릇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릇이 우리 생활 그릇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20여년전 도자기 만들기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잠시 지나는 바람이였습니다. 그때 나라 곳곳에서 도자기 굽는 곳이 많이 늘어났지만, 생활 속에서는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밑이 뽀족한 빗실무늬토기-국립김해박물관

 

 

 

▶높은 온도에 구운 토기와 낮은 온도에 구은 토기/연질과 경질-국립김해박물관

 

▶도자기 분류- 전남 영암 도기박물관

 

*토기 : 흙으로 빚어 바깥 구덩이에서 구운 것을 연질토기(초기는 주로 붉은색)라고 한다. 더 좋은 토기를 얻기 위해 가마를 만들어 더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을 경질토기(주로 회색-가야시대 주요한 그릇)이다. 토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았다. 유약은 불을 때고 나온 나무 그으름(재물)과 광물질을 섞어서 사용한다.

 

*도기: 흙을 빚어 가마에 넣어서 1,300도 이하에서 주로 굽는다. 김치독 같은 옹기를 도기라고 한다.

 

*자기 : 흙을 빚어 가마에 넣어서 1,300도 이상에서 주로 굽는다. 청자, 백자가 자기다.

 

*도기와 자기를 합쳐 도자기라고 함.

 

* 토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도자기는 유약을 바른다.

 

토기와 도자기 분류법이 일본 식이라 해서 이렇게 분류 하는 사람도 있다.

 

질그릇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는 흙그릇과 유약을 바른 흙그릇이 있다.

 

사기그릇은 유약을 바른 자기를 말한다.

 

* 토기-도기- 자기(청자-분청사기- 백자)

 

비색으로 이름난 청자가 고려의 중요한 자랑거리이다. 고려가 오랜 전쟁으로 상감청자(도자기표면에 무늬를 파서 그림을 새겨 넣는 방법)를 만들던 기술에서 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려 넣은 단순한 방법으로 변화했다. 그것이 분청사기이다.

 

 

 

 

 

2.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차사발

 

 

▶차사발. 굽으로 타고 내린 유약(포도알이라고도 함) 사발 두께, 면 모양 등이 말차를 우려낼때 맛이 다르다고 한다.-웅천도요전시관

 

 

▶가마에 넣어 사발을 포개면서 생긴 자국. 이 자국이 말차를 저을때 느낌으로 다가 온다고 한다.-웅천도요지전시관

 

▶막사발을 새롭게 만든 작품-창녕 도추 선생 작품

 

 

,현대로 넘어 오면서 어려운 나라 사정과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적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오래 전부터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높은 관심만큼 도자기를 발전시켜 나라 경제를 받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고대 일본인들이 만든 조몬 토기들은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그 뒤로 도자기 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고려사람들이 청자를 만들 때 일본사람들은 도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귀하니까 갖고자 하는 욕망이 많았습니다. 16세기 일본 전국을 통일한 오다노부나가를 비롯해서 도요토미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았을 때에는 도자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차사발을 이용한 정치를 하였고, 최고 권력자가 좋아했던 차사발은 당연히 보통 사람들도 좋아하는 유행을 낳기도 했습니다. 일본 영주가 멋진 차사발 하나와 성을 바꿨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조선에서 데리고 간 도공들이 일본 도자기 수준을 높였습니다. 조선 도공 후예들이 만든 도자기는 중국 청나라가 잠시 유럽 시장에 벗어 나 있을 때 일본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출되었고, 그 때 얻은 돈으로 근대 일본을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막이 들어 가는 말은 막국수 막걸리가 있다. 막이라는 건성건성을 만든다는 뜻도 있지만, 자연스러움을 잘 표현한 말일 수도 있다. 옛 서민들이 먹었던 음식이 이제는 웰빙 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니 말이다.

막사발도 질이 떨어지는 흙으로 대충 빚어내 그릇일 수 도 있지만, 대충은 오랫동안 감으로 익힌 숙달된 사람에게만 나온다. 막 빚어낸 막사발이 일본인들에게는 천하에 둘도 없는 차사발로 사랑을 받고 있다.

 

 

 

3.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마시는 차

 

 

▶일본 교토 00절에서 받은 말차

 

 

 

 

일본에서는 도자기 시장이 곳곳에서 열립니다. 그만큼 가정에서 도자기를 많이 사용을 하고 이름난 도자기를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이 자랑인 것이지요. 도자기는 생활용기이기도 하지만, 차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차하면 첫 번째 커피입니다. 커피도 도자기로 만든 머그잔으로 마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자기와 커피는 한 쌍이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마시는 차도 티백 형태로 나와 마시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 호텔 식당에 가면 커피도 나오지만, 오차라고 해서 일본차와 홍차가 함께 나옵니다. 우리도 녹차도 나오지만 마시는 양이 훨씬 적습니다. 차 그릇은 차와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음력 815일은 차례를 지내는 추석입니다. 우리도 중국 영향을 받아 차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생활과 밀접하지는 않습니다. 19세기초에 들어서 다산 정약용 선생과 초의 선사가 차 부흥을 한 것이 모두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일본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에 대한 인식 정도 다릅니다. 이 점을 알고 차사발은 어떤 식으로 알려 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4. 웅천 막사발(차사발) 이야기

 

*하나

일본인들이 웅천에서 만든 차사발을 좋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차사발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미치도록 좋아했던 차사발 매력은 무엇일까요? 일본인들이 좋아한다고 우리까지 좋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 수 있습니다. 일본이 좋아한다고, 좋아 할 필요가 없다 하는 것 보다는, 그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우리도 인정할 만한 타당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도요토미는 다도를 센노리큐에세 배웁니다. 절대권력을 쥔 도요토미는 다도가 가지고 있는 본래 정신을 버리고 사치스러움과 권력 욕심을 채운는데 사용했을 겁니다. 이 때 센노리큐가 조선에서 들여온 막사발을 내밀게 됩니다. 이것이 다도라고요, 차를 마시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겠지만, 차를 마시면서 차그릇에 담긴 문양, 형태를 보고 즐기는 것을 라큐()라고 합니다.

센노리큐가 일본 다도를 통해 절제미, 순박미를 전하고자 했지만, 절대권력에 빠진 토요토미에게 그 이야기가 들어 올 수가 없겠지요. 결국 토요토미는 센노리큐에게 자결을 명령합니다.

아무리 좋은 뜻도 삶 속에 실천 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도 지켜지지 않고 변절될때는 일본인이든 우리나라 사람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웅천 막사발 정신이 센노리큐를 통해 일본에 제대로 전해졌다면 임진왜란도 없었겠지요.

 

*

웅천막사발, 하동막사발은 짧은 시간에 잠시 나타납니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유행 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주로 마시는 말차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차 잎을 말리거나 득은 잎을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 마시는 중국과 달리 일본 사람들은 가루를 내어 사발에 담아 젓어서 차 맛을 냅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큰 사발이 필요 하겠지요. 윤기있고 매끄러운 도자기 보다는 그릇 안에 까칠한 면이 있는 막사발이 말차 향이나 거품 내기가 좋았겠지요. 말차를 마시면서 차 그릇을 요리조리 감상하는 버릇이 생기다보니 차사발에 의미를 붙이기 시작합니다. 모양이 다양한 돌을 보고 의미를 담고 요리조리 감상하는 것과 같겠지요.

 

조선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을 중심으로 고려때부터 바닷가 마을을 수시로 드나들던 왜구들의 본거지 대마도를 정벌하게 됩니다. 그 뒤 일본인들은 합법적인 무역을 요구하게 되고, 염포,제포, 부산포 세 개 항구를 열어 주고 합법적인 무역을 하게 됩니다. 제포(내이포라고 함. 내이는 냉이를 한자로 옮긴 말. 풀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된 예)는 웅천으로 조선 중종때 왜인들이 불만을 품고 웅천읍성을 공격을 하게 된다. 그 뒤 제포는 문을 닫게 되지만, 웅천 가까이에 있는 가마들에서 나온 도자기를 사 갔을 것을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웅천 가마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내던 도공이 남은 흙으로 생활에 필요한 생활 그릇을 막 빚어 내다 팔았을 것이다. 질 높은 도자기 그릇을 만들던 흙보다 질이 떨어진 흙으로 막사발을 만들었고, 그것이 일본인 센노리큐에 전달되어 막사발이 차사발이 되어, 일본인들의 보물로 사랑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막사발이 차사발로 귀한 대접받다보니 아주 일부는 일본인에 맞는 차사발로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 되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이도다완의 이름. 하동 새미골가마터. 기울어진 간판처럼, 잠시 바람이였나 쉽다.

 

*

웅천 또는 하동에서 만든 막사발이 차사발로 거듭나 일본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차사발을 대략 100여개가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막사발 멋을 재현하고자 만들고 있지만, 450여년 전에 만든 막사발 느낌을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비롯 막 만들었던 막사발이지만, 오랜 숙련과 도공 혼이 담겨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그런 막사발을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몇 십년 동안 잠시 나왔다가 사라지고 지금도 만들지 못한 차사발이기에 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줄 모릅니다.

 

*

고려때 만든 청자나 조선때 만든 백자는 왕이나 귀족, 양반들이 주로 사용했던 그릇이었습니다.

막사발은 백자나 분청사기를 만들었던 수준높은 도공이 순수한 백성으로 입장에서 만든 자연스러움은 조선 도공이 지양하고자 했던 도예 정신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그 정신은 자연과 함께 하고자 했던 조선의 아름다움이요 선비 정신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은 그 사람이 살았던 환경,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21세기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도 웅천 막사발에 담겨 있다고 봅니다.

비록 일본을 거쳐 우리 것을 찾았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되찾아 우리 것을 만든다면 웅천 막사발을 진정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5. 막사발과 벚꽃

 

▶일본에서 조선 도공이 만든 작품. 한글이 쓰여져 있다.

 

 

 

우리 조상들도 봄이면 꽃놀이를 했습니다. 지금은 꽃놀이 대명사가 벚꽃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벚꽃이 일본 꽃이라는 인상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제 누가 많이 사랑하느냐, 누가 많이 활용을 하는가에 따라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을 겪으면서 우리의 자신감도 많이 높아졌습니다. 제대로 알고 우리 정신에 맞게끔 만들어 간다면 막사발도 우리 정신이 담긴 그릇이요. 벚꽃도 우리 꽃이 되는 것입니다. 진해의 아름다움과 정신은 막사발에서 찾고, 제대로 된 일제 잔대를 청산하고 그 상징물은 우리벚꽃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다의 대표나무 팽나무가 있음을 기억 했으면 합니다. (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