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이야기를 모아 봤습니다.
▶진해 경화역
아래에 참고한 글은 <진해의 벚꽃-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에밀 타케의 선물-정홍규 지음>,<속담과 설화 속에 나오는 우리 나무 이야기-김태휘 지음>,<나의 꽃 문화산책-손광선>,<우리나무의 세계-박상진 지음>이다.
-벚나무는 화려한 꽃을 원 없이 피운다. 화려한 꽃을 피우고 난 뒤 버찌라는 열매를 맺는다.
새들의 입장이 아니라 순전히 사람 처지에서 보면 벚꽃은 화려하지만, 버찌는 크기도 작고, 맛도 뛰어나지 않다. 서양에서는 버찌와 같은 체리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벚나무하고는 다르다.
화려한 꽃도 피우고, 버찌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일까? 복숭아, 배, 사과, 자두도 화려한 꽃을 피우고 사람들에게 맛있는 열매도 준다. 가끔 버찌를 가지고 술을 담은 사람은 있지만, 직접 먹기에는 조금 먼 당신이다.
-나무 껍질이 벚나무와 비슷한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는 꽃이 피는 줄 모를 정도로 작고 화려하지도 않다. 애써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꽃인 줄도 모른다. 꽃을 피우는데 힘을 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몇 백년을 산다. 개량을 한 벚나무는 수명은 60년에서 80년을 산다고 한다. 늘 예외가 있다. 제주 봉개동 왕벚나무는 270여년이 되었고, 화엄사 올벚나무는 400여년이 되었다. 벚나무는 꽃을 화려하게 피지만 수명을 짧고, 느티나무는 꽃은 보이는 듯 마는 듯 하지만 오래산다. 모두 사람의 입장에서 본 것이지만, 나무들도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삶도 벚나무와 느티나무 삶과 견줘 보면 좋겠다.
▶벚나무 숨구멍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고 난뒤 조선 왕이 살던 창경궁에 있는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벚나무를 심고, 동물을 들여 유원지를 만들었다. 일제가 만든 벚꽃 마당 제 1회가 되는 셈이다.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창경원하면 벚꽃놀이를 떠 올리는 이유이다.
그 뒤 일본은 청주, 마산, 진해에 대규모 벚나무를 심었다. 이런 벚꽃 놀이 기억과 함께 조 선의 정기를 말살한 일본에 대한 좋지 않는 감정이 그대로 남았고, 벚꽃에 좋지 않는 감정 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추측컨대 경남지역 가로수 60% 이상이 벚나무이다. 늘 보는 벚나무이만, 학교 교목으로 벚나무로 정한 학교는 없는 것 같다. 벚나무 꽃하면 사쿠라는 일본꽃이라는 뜻이 먼저 떠 올라서 그럴까? 꽃이 너무 화려하니까 공부하는 학생들의 정서에 맞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벚꽃 하면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벚꽃 축제는 일본 곳곳에서 열린다. 벚꽃은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고, 60년대 이후 진 해에 있는 많은 벚나무가 일본에서 들여왔거나 일본 품종이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육종 기 술이 발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 못지않게 벚꽃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한다.
지금 있는 벚나무가 일본 품종이라고 해서 우리나무 우리 꽃이 아니라는 생각이 남아 있다 면, 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식물은 국경이 없다. 누구 더 많이 사랑하는가가 더 중요 할 것이다.
예쁜 사람을 꽃에 견줘서 말한다. 벚꽃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당신 사쿠라 같다’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사쿠라는 욕이 되는 것이다.
1985년 2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마산역광장에서 유세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여당인 민정당 국회의원을 향해 야당 후보가 ‘겹사쿠라’ 라고 표현 한 적이 있다. 어쨌든 그 야당후보는 당선되었고,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지냈다.
(거듭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벚나무만으로 그치지 않고 ‘사쿠라’라는 어휘 그 자체에도 영향이 미쳤다. 한국어 속에 ‘사쿠라’라는 일본어가 그대로 사용되었을 때-일본어에도 ‘스파이 염탐꾼’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한결같이 ‘배신자’. ‘훼방꾼’, ‘스파이’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되었다.-손광선 <나의 꽃 문화산책>)
-진해 군항제는 1952년 이순신 장군 동상을 북원로타리에 세우고 추모제를 연 것부터 시작 되었다. 만일 벚꽃이 일본 꽃이라면 이순신 장군 뜻을 받드는 추모제와 벚꽃은 함께 갈 수 없다. 진해군항제는 이순신장군 뜻을 받드는 추모제와 벚꽃 축제가 한데 어우러진 군항제이다.
이렇게 어정쩡한 모습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결과이다.
제대로 친일 청산을 했고, 제대로 민족정기를 세웠다면, 벚나무가 일본 품종이라고 해도 진해에 터를 잡고 진해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벚나무는 진해 벚나무가 되는 것이다.
나라의 정체성이 제대로 세워져 있다면, 다양한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체성 세워지 못하면 작은 문제에 집착 하여, 늘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하게 된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알고 공론화 시켜 정립을 해왔다면 이미 정리되었을 것이다.
진해에 새롭게 생기는 학교가 있다면 제주도 왕벚나무가 학교 교목으로 정해지는 날도 기대 해본다.
1945년 일제강점기를 벗어나면서, 진해, 마산에 심어져 있던 벚나무를 일본나무라고 많이 베어 없앴다고 한다.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광복이후 일본에서 돌아왔던 동포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땔감 부족으로 베어 낸 경우가 더 많았지 않나 싶다. 일본에서도 2차대전후 벚나무가 많이 베어졌다고 한다. 비록 그 나무가 정체성에 맞지 않다고 함부로 베 내는 것은 정체성 세우는 것 못지않게, 생명을 함부로 하는 결과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들 필요에 따라 심어 놓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그냥 베어내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겠나. 사람들도 다문화를 받아들이듯이, 이미 식물은 오래전부터 다문화였다.
그런데 늘 예외가 있다. 나라를 지킨 영혼을 달래는 공간 즉, 호국공간 만큼은 일본 품종 벚나무는 심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2022년부터 제주 원산지인 왕벚나무 묘목이 보급된다고 하니, 수명이 다 한 벚나무를 바꿀 때는 우리나라 원산지에서 난 왕벚나무를 심으면 된다.
▶제주 봉개도 벚나무(숲정이 님 사진)
옛 기록에 나타난 벚나무 첫 기록은 삼국유사에 승려 충담의 ‘앵통(櫻筒)’ 기록(765년)이 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벚나무 기록이다. 그 뒤 이야기를 보면 고려때 팔만대장경을 만든 재료 64%가 산벚나무로 되어있다. 산벚나무가 대장경판을 만드는 재료가 맞았고, 그만큼 흔했다는 것이다.
몽골이 침략하기 전에는 참나무와 함께 산벚나무도 많았을 것이다. 이 산천에 소나무, 이 산천에 진달래는 조선시대 와서 이야기일 것이다. 고려때에는 봄 날 남쪽 온 산천에 산벚꽃 이 피어 났을 것이다.
-세종대왕때 <오례>기록에서 벚나무 껍질인 화피(樺-자작나무화皮-가죽피)가 중요한 군사용 물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에도 화피를 89장 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벚나무과 꽃보다는 껍질이 중요하게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피는 활 몸체에 대어 방수 효과를 내던 것이다. 고급 활 제작용으로는 몸체에 옻칠을 했다고 한다. 나무 껍질 쓰임새로 북쪽 지방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남쪽에는 벚나무 껍집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결혼식 화촉을 밝힌다는 화촉에 화는 빛날 화(華)를 쓰지만 빛날화에 나무목을 더해지만 자작나무 화(樺)가 된다. 자작나무 겁질 성분에 기름기가 많아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는 것이다. 자작나무 화와 벚나무 껍집도 <화피>라고 하는 것도 자작나무 껍질 성분과 비슷하게 본 것이다.
▶벚나무 껍질
-조선때 청나라에게 치욕을 당했던 인조의 뜻을 받들어 구례 화엄사 벽암선사가 올벚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인조를 이어 임금이 된 효종되 북벌의 뜻을 두고 활을 만드는 중요 재료를 쓰기위해 벚나무를 심어라고 했다고 한다. 벚나무는 꽃뿐만 아니라 호국의 나무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진해에 이순신장군과 벚나무 화피는 전혀 다른 얘기가 아닌 것이다.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 시대에 있는 역사사실도 제대로 전달 못하면 후손으로 부끄럽지 않는가 싶다.
▶화피를 빨간선 부위에 감았다고 봅니다.
-1905년 일본과 러시아의 해전은 일본의 대승으로 끝났다. 러일전쟁의 승리는 진해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러일 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1912년 그 기념으로 일본 벚나무를 미국에 선물에 했고, 그 답례로 미국은 일본에서 산딸나무로 선물했다고 한다. 일본이 선물한 벚나무는 미국 동북부 포토맥 강변에 심어졌다. 미국도 벚꽃의 화려함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면서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미국은 일본을 추방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 일본인을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선물한 벚나무를 미국인들은 없애지 않았다.
-왕벚나무 원산지 논쟁 결론은 이렇다. 2018년 국립생태원에서는 제주도에 있는 왕벚나무는 산벚나무와 올벚나무에서 나온 제주도 산이라고 결론을 냈다. 일본 벚나무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에서 개량한 벚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여 오게되었다. 일본 벚나무 대표 품종이라고 할 수 있는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재배왕벚나무>도 잡종이다. 오랫동안 화려한 꽃 중심으로 개량한 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가깝고 먼나라. 필요에 따라 많은 물건이 오고 갔다. 산철쭉도 오고가고 벚나무도 오고 갔고 일부는 서로 교배가 되었으리라 생각 한다. 토종민들레가 처음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서양민들레와 교잡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편단심민들레’ 가사가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교잡종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큰 틀에서 보면 원산지 만큼 중요한 것이 누가 사랑하고 그것을 생활에 더 많이 활용하는 가에 달려있다. 우리가 늘 가까이하고 이렇게 많이 보는 벚나무에 일본에 굴레를 씌여 주눅 들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벚꽃이 일본 꽃이라는 의미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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