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과 아이들

봉하마을 둘러보고 김해유적지 찾아보기- 허황후릉

갈밭 2010. 4. 3. 12:17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가가 있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많은사람들이 찾고있지요.

봉하 마을을 들렀다가 김해시 곳곳에 있는 유적지를 찾아보세요.

철의 나라와 알려져 있는 김해금관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와 더불어 제4의 나라와 알려져 있는 가야의 유물을 통해

여러분들은 김해금관 가야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 할 수있어요.

그럼 어떤 곳들이 있냐고요?

은하사,허황후릉,국립김해박물관,가야누리,대성동고분박물관,김수로왕릉,봉황동 유적지 들이 있지요.

올 5월 부터는 제4국 드라마도 방영된다고 하네요. 

 그 두 번째로 허황옥이라고 불리우는 김수왕 왕비 허왕후릉을 김해 초딩들과  떠나 보도록 하지요.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김해 금관 가야에 오면서 불교문화와 장군차를 들여왔고,

아이을 열 명이나 낳았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정말 놀랐어요.

우와~ 열 명이나 아이를 낳다니. 살아난 아이가 열 명이라면

실제 낳은 아이는 더 많지 않겠어요.

여자 몸으로 인도에서 그 먼길을 왔고, 건강하게 아이를 쑥 쑥

잘 낳았으니, 허황옥은 남자 못지않는 힘을 지닌 황후였던 것 같아요,

하기야 2,000여년 전이니까? 지금의 눈높이로 가야를 이해 하면 안될 것 같아요.

 

김해에 사는 여성분들은 허황후를 주체성을 가진 한국대표 여성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지요.

그래서 김해시에 사는 뜻있는 여성들이 김해시 예산으로  2007년까지 허황후 실버축제를 다섯 번이나

치루었대요.

왜 다섯 번만 치루었냐면은요?

다섯 번 치루고 난 뒤 부터는 김해시에서 예산을 지원 받지못했대요.

김수로왕에 기대지 않고 자기 성을 가지면서 자기 중심을 지킨 여성은 우리

역사에 많지 안잖아요.

그런 뜻을 이어가고자 했던 허황후 실버축제가 계속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

김해 여성들이  많이 안타까워 한대요.  

 

사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지난 일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 역사를 지금 사람들의 삶과 연결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해요,

잘된  역사는 배우고 잘못돤 역사를 새롭게  생각해서 우리 삶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가 아니겠어요?  

허황후릉에 가서 느껴봤으면 하는 이야기는 다 한 것 같아요.

나머지는 이야기는 곁 가지로 붙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왕릉은 신라 왕릉이 있는 경주와 부여공주 왕릉,

서울 가까이에 있는  조선왕릉이 있지요.

고구려와 고려 왕릉은 북한과 중국에 있어 쉽게 가볼 수가 없지요.

 

그런데 김해 금관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과 허황후는 부부이지만  조선시대 왕릉처럼 함께 있지않지요.

사극에서 나오는 왕과 왕비의 모습을 떠 올리면서 허황후릉을 본다면 그런 의문 가질 수가 있지요.

시대에 풍속에 따라 능을 쓰는 방법이 다른 것이겠지만,

지금의 눈 높이로 해석해서 허황후릉만 보더라고 허황후가 힘과 권력을 가진 황후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가 있지요.

 

인도에서 왔을때도, 허황옥이라는 아유타 공주 한 사람만 온 것이 아니라,

허왕옥이 대표하고 인도 아유타국의 문화와 김수로왕의 견줄수 있는 힘과 함께 왔다고

생각하지요.

 

허황후릉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거북모양의 산인 구지봉이 능을 감싸고 있지요.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나기전에 아홉 부족이 춤추고 놀던 좋은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지요.

 

허황후 릉은 후손들이 꾸준히 관리 해온 덕분으로 능으로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지요.

들어가는 입구에는 화살과 붉은 색깔의 문인 홍살문이 있고,

인도에서 올때 바닷바람을 잠 재우기 위해 배에서 싣고왔다는 파사석탑이 능 앞에 자리잡고 있어요.

능 앞에 파사 석탑이 나쁜 기운을 막아주니, 따로 문인석이나 망주석 따위는 세울 필요가 없지않겠나 싶어요.

다른 능에서 볼 수 없는 구조이지요.

 

 

 

 

~김해 국립김해박물관 옆에 있는 허황후릉~

 

 

 

 

 

~김해 대성동 고분 박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제사를 지내는 모습?  점을 치는 모습?

청동 거울을 든  모습이 여자 같이 보인다.

제사와 정치를 함께 주관했던 여자 부족장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허황옥도 이런 힘과 권력을 가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왼쪽 사진은 허황후 릉 앞에 있는 파사 석탑, 돌이 붉다. 왜 탑이 깨지고 적은 돌만 남아 있을까?

   돌이 붉은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얘기가 있다.

   오른쪽 사진은 허황릉 위쪽에 있는 구지봉을 상징하는 돌.

 

 

 

~ 구지봉에 있는 고인돌. 김수로가 알에서 태어나기전에 살았던 사람의 무덤일것이다.

     고인돌 위에서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는 글이 있다. 그럼 한석봉 선생님이 무덤에 낙서를 한 것일까?

    이곳에서 김해 박물관을 바라보면 철의  상징인 용광로 모양의 김해 박물관 모습을 볼 수있다.

 

 

 

 ~허황후릉에서 구지봉에 올라가는 길에 핀 진달래.

 

 

              

~ 김해 박물관에 있는 토기 모양의 배. 실제 무덤 속에서 나온 토기는 손바닥만한 크기인데  크게 만들어 모형을

   해 놓았다. 김해 금관 가야가 바다를 낀 해양의 나라 상징일까?

   허황옥이 인도에서 오면서 타고온 배 모양일까?

   허황후 보다 훨씬 뒤에 나온 유물이지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 왼쪽 사진은 가야누리 체험실에 있는 방패. 오른쪽은 김해박물관에 있는 방패 꾸미기, 회오리모양이 해양문화를

   뜻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소라 모양일까? 바람개비 모양?

 

 

 

 ~왼쪽 사진은 김수로왕릉 바닥에 있는 회오리 모양. 오른쪽은 허황후릉에 있는 쌍어 모양 수고꼭지.

  회오리 문양과 쌍어 모두 바다이다.

 

 

~왼쪽 사진은 대성동 고분 박물관에 있는 무사 모습. 얼굴이 둘굴고, 눈이 크고, 코가 납작한 남쪽 사람의 얼굴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창녕 송현동 고분에서 나온 어린 소녀 순장자의 모습을 복원한 모습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허황후 모습을 떠 올리는 상상을 해봤다.